※주의. 가정 폭력 묘사 및 언급이 있습니다.
**
그러나 미미는 초밥을 먹지 않는다.
검찰청 근처에는 늦은 새벽까지 문을 여는 일식집이 있다. 야근이 많은 검사들을 타깃으로 삼아 장사를 하는 음식점인데, 보라는 자신이 먹을 초밥을 사는 대신 미미가 먹을 초밥을 자주 골랐다. 검찰청에서 숙식하는 날이 잦고 퇴근을 하는 날에도 늦은 시각에 퇴근을 하는 날이 많은 보라는 일식집이 아니면 음식점을 고를 선택지가 없었다. 그 시각에도 문을 여는 음식점은 그 일식집뿐이어서 보라는 울상을 지으며 초밥을 골랐다. 연어초밥 대신 새우초밥. 농어초밥 대신 계란초밥. 장어초밥 대신 가리비초밥. 광어초밥 대신 롤 초밥. 심미심미 코코밥. 보라는 울상 지으며 초밥을 고르는 귀여운 단골로 통했다. 가끔 서비스를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보통 생선이 올라간 초밥이 서비스로 나와서 보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차에서 초밥을 먹었다. 차에 냄새 배는 거 진짜 싫어, 미미야. 차에 쌍화탕을 흘린 미미에게 칭얼거린 것이 바로 그제였다.
보라는 깡생수를 마시며 연어초밥을 씹어 넘겼다. 평소에는 그토록이나 좋아하는 연어초밥인데 늦은 새벽 차에서 홀로 외로이 초밥을 씹어 넘길 때면 밥이 알알이 분리되어 입 안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검사고 뭐고 그냥 텅 빈 도로에서 신호위반이나 해버려. 그러나 보라는 사람이 있건 말건 신호위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새벽 두 시 반. 보라의 외로운 요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미미는 왜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에 살지. 삼층이었지만 야근에 피로에 꽁꽁 뭉친 보라는 삼층 계단을 밟는 것도 힘겨워했다. 더위에도 수면 부족에도 약한 보라는 여름 새벽에 미미 집 계단을 밟을 때마다 아주 어릴 적 죽은 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왔다. 염병. 저승에서도 때깔 나게 잘 살고 있네. 미미에게 배운 욕은 이럴 때 요긴하게 쓰였다.
이 시각 미미는 항상 잠들어 있다. 미미는 음식도 채소를 좋아하고 간식으로 오이나 양배추를 먹는 사람인데다 초저녁잠까지 많아 자주 보라를 헷갈리게 했다. 혹시 뱀파이어 아니야? 아니면 구미호 아니야? 아주 늙은 사람 같은데 왜 젊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무서운 영화를 볼 때 보라가 덜덜 떨며 물어보면 미미는 생오이를 씹으면서 보라의 말도 씹었다. 그리고 보라의 손을 잡았다. 그만 좀 떨어. 너랑 호러 영화 다음부터 절대 안 봐.
잘만 봤다. 둘이 본 호러 영화만 삼백 편은 넘었다. 일본 중국 베트남 미국 영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어쩌구 저쩌구. 보라는 각국의 언어로 비명을 지를 줄 알았다. 보니까 배워졌는데 미미는 보라가 그 나라의 언어로 비명을 지를 때마다 허허 웃었다. 내가 미미의 연예인이지. 항상 웃게 해줄게. 보라는 남몰래 자부심을 가지며 제자신을 달랬다.
1993101430. 이렇게 쉬운 숫자 배열로 비밀번호를 설정하면 어떻게 하냐고 미미를 달달 볶았지만 미미는 이 집에 산 3년 동안 한 차례도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나 숫자 잘 기억 못하는 거 알잖아. 이런 배열 아니면 나 집 못 들어와. 호그와트 기숙사 문지기라도 데려오든가. 보라는 울상을 지으며 보조잠금키를 달았다. 그래도 미미는 그건 꼬박꼬박 잠그고 잤다.
미미가 작은 소음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보조잠금을 작은 키로 여는 소리에 미미는 항상 잠에서 깼다. 막 깨서 입맛도 없을 텐데 보라가 항상 같은 조합으로 공을 들여서 사 오는 초밥을 잘도 먹었다. 무슨 맛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보라는 그거 엄청 맛있는 건데……. 칭얼이며 소스를 종지에 더 따라주었다. 미미는 초밥을 폭 찍어 먹으며 간장 맛 나, 말했다. 보라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두 네가 먹어줘서 나는 좋아. 신보라 바보야? 놀림이 따라왔다.
미미가 초밥의 맛을 몰라도 보조잠금 풀리는 소리에 항상 일어나도 보라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사랑과 평화. 누구도 해치는 이 없었다.
**
정확히 말하자면 미미는 회를 못 먹는다. 한 번 게워낸 음식은 두 번 다시 먹지 않는 미미가 지난 여름 욕실 타일에 회를 전부 게워냈기 때문에.
미미가 경리로 일하는 공장은 금요일 저녁 자주 회식을 했다. 팀 단위로 작게 모이는 회식부터 시작해서 회사 사원 전체가 모이는 회식까지. 그날의 회식은 후자였고 술을 잘 마신다며 항상 회식 자리에 픽 되는 미미는 그날 안주인 회를 잔뜩 집어 먹고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 평소에 질색하는 안주빨을 세우며 술잔을 피해보려 했지만 같이 일하는 팀장이며 상사들은 미미를 붙잡고 술을 먹였다. 이래서 입사 회식 때 술을 잘 마시면 안 되는 건데. 후회했지만 별수 없었다. 직장을 옮길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 지내야 할 것이었다.
드물게 만취하여 할증이 붙는 택시를 겨우 잡아 탄 날, 미미는 차라리 모텔에 갔어야 한다고 후회했다. 뭐하러 웃돈을 얹어주고 택시를 탔어. 근처 모텔이 수두룩한데 왜 택시를 탔어. 추근대는 남자들은 이미 넉다운 되어서 집에 귀가한 지 오래인데. 팀장은 팀장이 끼고 도는 남사원 옆에 두고 나왔잖아. 왜 택시를 탔어.
왜 택시를 탔냐면. 신보라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매번 사 오는 건 똑같은 초밥집의 똑같은 초밥밖에 없지만 검사 나으리 맨날 야근하느라 얼마 보지도 못하는데 신보라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래서 집 가서 기다리고 싶어서. 술 냄새 폴폴 나면 신보라가 졸려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레토르트 북엇국이라도 끓여주겠지. 시들시들하는 콩나물도 상한 건 걸러내고 그나마 싱싱한 것들만 골라서 콩나물국이라도 끓여주겠지. 그런 마음에.
그러나 미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치소에서 막 출소한 아버지였다. 남루한 행색에 조로한 남성을 보면 바로 뒤돌아서 나갔어야 하는 건데 왜 그대로 갔어.
미미의 아버지 A는 단순폭행으로 십 년을 살았다. 그 전에 신고된 건수가 많아서였다. 모범수도 못 되었던 모양인지 십 년 팔개월을 그대로 살고 출소한 뒤 하나뿐인 딸의 집으로 찾아왔다. 사실은 거짓말.
미미의 아버지 A는 국회의원을 폭행하여 십 년을 살았다. 술에 만취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던 A는 마침 길을 지나가던 국회의원을 잡아 팼다. 잡아 팼다기에는 몇 대 친 것이 전부였는데 바로 암암리에 기소되었고 암암리에 형을 살았다. 그 전에 신고된 건수는 핑계가 되었다. 모범수도 못 되었던 모양인지 십 년 팔개월을 그대로 살고 출소한 뒤 하나뿐인 딸의 집으로 찾아왔다. 숨겨진 게 있잖아.
그 전에 신고된 건수의 정체. 수없이도 신고된 가정폭력. 어렸을 적 도망친 정씨네 아내는 정말 도망친 거야? 정씨네 아내가 신고했고 미미가 신고했고 옆집 아주머니가 신고했고 신보라가 신고했고 아랫집 여자가 신고했지만 늘 훈방조치 되었고 그런 날이면 미미는 더 맞았다. 맞고 나서는 신보라네 집에 갔다. 신보라는 신고한 걸 후회했다. 좆같은 새끼들. 정의는 좆이나 정의야. 보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욕을 했다.
그리고서는 미미를 제 방에 두고 매일같이 공부에 매진했다. 판사나 검사나 할 거야. 변호사는 필요 없어. 미미야, 내가 누구를 변호하겠어? 너 아니면 누구를 변호해. 그런데 너를 변호할 일이 뭐가 있어. 매일매일 미미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아프다 신음하면 진통제를 먹이고 매일매일 미미의 상처에 밴드를 붙이며 보라는 공부했다. 공부해서 법대에 갔고 사법고시를 패스했고 연수원을 수료했고 검사가 되었다. 그리고 초밥을 사서 집에 왔다. 미미의 집.
그 전에 신고된 건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모양이지. 피해자인 딸의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A에게 넘기는 게 어디 있어. 보호 요청을 했으나 항상 경찰에게 묵인 당했다. 보호가 필요해요? 집에 남자 없어요? 미미는 과거를 잊지 않았다.
잊지 않으면 뭐해. 미미는 술에 만취해도 잘만 걸어 삼층까지 온 자신을 저주했다. A는 다가와 미미의 손목을 붙들었다. 하나뿐인 딸년이 아빠를 위해 증언은 해주지 못할망정 가정폭력으로 보호 조치를 요청해? 그런 식이었다. 있는 돈 있으면 다 내놔봐. 그런 식이었다. 매달 어머니의 월급이 들어오면 손을 올려서라도 다 가져가고 말았던 A가 생각났다. 그런데 내 돈은 안 돼. 내 돈으로는 할 일이 있어.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 A가 손을 올렸다. 살성이 약해서 금방 붓는 미미의 볼. 금방 멍드는 미미의 팔, 다리, 복부, 허벅지. 머릿속의 뇌까지 흔들리는 기분. A가 다시 손을 치켜 올렸을 때 미미는 주변에 있는 것을 들어 A의 머리를 내리쳤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기절하지 않아 다시 나를 패면 어떡해. 나는 죽으면 안 돼. 죽지 않고 살아 할 일이 있어.
A가 어떻게든 될 때까지 내리친 것은 미미. 미미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보라가 사법고시 패스해서 미미가 기념으로 만들어준 유리 트로피. 머리가 깨진 A를 바닥으로 밀어두고 미미는 심호흡을 했다. 껄떡이며 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셨다. A는 몸을 움직이다 곧 멈추었다. 시간이 흐르고 미미는 남자의 몸을 건드렸다. 차갑게 식은 몸.
그 순간 미미에게 떠오른 건 경찰도 구급차도 아니고 보라였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집었다. 피에 젖은 손가락이 자꾸 화면 위에서 미끄러졌다. 최근 통화 목록 중 가장 최근 수신된 전화번호를 눌렀다. 어, 미미야. 나 오늘은 못 갈 것 같아. 일이 좀 바쁘네. 아주 익숙한 음성.
미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못 와. 보라야, 앞으로 함께 있어준다고 했으면서 왜 못 와. 일이 많이 바빠? 보라야, 우리 앞으로 못 볼 수도 있어. 나 지금 많이 무서워.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모르겠어. 보라야, 근데 저 사람이 나를 팼어. 맞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어.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라가 못 온다는 소리에 입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곧이어 의자가 푹 움직이는 소리, 시계를 차는 소리, 구두가 바닥에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미야, 가만히 있어. 나 지금 가.
보라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시 닫았다. 미미의 집 멀리에 있는 잡화점에 들러 표백제를 샀다. 운전하는 내내 신호를 잘 지켰다. 빨간등은 정지, 초록등은 통행. 그런 게 어디 있어. 사실 시속 140km으로 신호는 무시한 채 달렸다. 현관문에 들어서서는 미미를 일으켜 욕실로 밀어 넣었다. 미미의 몸에 물을 부었다. 피가 씻겨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맴돌이치며 붉은 물이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서는 전화했다. 얼마 전 불량 경찰이 넌지시 찔러준 매매 브로커였다.
남자가 사라진 방에서 피에 젖은 이불과 시트를 걷어냈다. 욕조에 물을 받아 표백제를 풀고 이불과 시트를 집어넣었다. 바지를 걷고 푹푹 이불 사이로 빠지는 발을 들어 계속 이불을 내리밟았다. 가만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미미의 발을 욕조 속으로 넣었다. 밟아, 미미야. 미미는 다시 주저앉았다. 못하겠어. 못하겠어, 보라야. 이걸 어떻게 해? 나 살인자야? 나 이제 감옥 들어가? 감옥 가면, 감옥 가면 어떡해? 보라야, 나 면회 보러 올 거지?
아니, 안 가. 보라는 계속 밟았다. 바닥은 안 닿고 계속 빠지기만 하는 발이 짜증나 보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미미야, 네가 감옥에 왜 가. 이건 정당방위인데. 미미는 말했다.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감옥에 안 가. 아버지 죽인 딸 말은 아무도 안 믿어줄 거야. 보라는 계속 이불을 밟았다. 아니, 안 가. 네가 법원에는 왜 가.
너 법원에 안 갈 거야. 경찰에 신고도 안 할 거고. 우리한테 정의가 어디 있어. CCTV 녹화는 폐기할 거고 네 아버지 시체는 다시는 못 찾아. 뼈 하나 남겨달라면 그렇게 할게. 무덤이라도 만들고 싶으면 그렇게 해. 미미야, 내가 말했잖아. 너 정당방위야. 정당방위 아니래도 상관없어. 너 그러라고 공부했어. 너 그러라고 사짜 달았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라고. 혹시 걸려도 너 감옥 안 보내려고. 너랑 평생 잘 먹고 잘 살려고.
미미는 그제서야 욕실 타일에 그날 먹었던 회를 모두 게워냈다. 보라는 미미가 마음껏 게워내도록 등을 두드려주고 샤워 호스로 흔적을 지워냈다.
보라는 법원에 출근했고 미미는 법원에 출두하지 않았다. 보라는 그 후 생선이 없는 초밥을 사 왔고 미미는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
보라는 올해 여름에도 초밥을 사 간다. 검찰청에서 숙식하는 날이 잦고 퇴근을 하는 날에도 늦은 시각에 퇴근을 하는 날이 많은 보라는 일식집이 아니면 음식점을 고를 선택지가 없다. 여름이라 초밥을 먹이는 것이 걱정되는데. 보라는 오늘 점심 본 뉴스를 떠올렸다. 여름철 폭염으로 더워진 날씨, 생선을 먹어 식중독에 걸린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조개는 생선이 아닌가. 가리비는 생선이 아닌가. 새우는 괜찮은가. 일단 롤과 계란초밥은 괜찮겠지. 보라는 오늘도 어김없이 서비스를 받아 차에서 깡생수를 들이켰다. 차에 배인 초밥 냄새가 문을 열기만 해도 느껴졌다. 누구는 초밥 냄새만 맡아도 행복하다던데. 일단 보라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미미가 이사를 간 집 근처에도 새벽에 영업을 하는 음식점은 없었다. 혹시나 기대했던 보라는 축 늘어져 다음날에도 초밥을 사 집에 갔다. 집 주변 음식점은 아침 점심 식사 판매는 해도 새벽 식사는 취급 안 한다고 했다. 솔직히 초밥 물린 지도 오래되었다. 미미는 초밥 그만 사 오라고 했지만 보라는 배가 고팠다. 라면은 싫고 편의점 도시락은 더 싫었다. 보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초밥을 먹었다.
보라와 미미는 올해 봄 이사했다. 미미는 집에 안 가고 매일 제 집에 찾아올 거면 그냥 집을 합치자고 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전세는 너끈히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보라는 열심히 발품을 팔아 선택지를 좁히고 좁힌 선택지에 미미를 데려가 결국 계약했다. 이사를 한 날 보라는 기진맥진하여 자정이 되기도 전에 잠들었다. 얼마만의 휴가인지 모른다고 들떠서 밤을 샐 것이라고 하더니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 씻고 자야 하는데, 신보라.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미는 바닥에 늘어진 중화요릿집 그릇을 치웠다. 씻고 돌아와 선득한 몸으로 보라를 만져도 보라는 일어나지 않았다. 잠들 때는 업어가도 모를 애. 보라야, 나도 너랑 잘 먹고 잘 살고 싶었어. 통장은 텅장 됐지만. 그리고서는 미미는 밤을 새웠다. 초저녁잠 때를 놓치면 꼭 이렇게 밤을 새우게 됐다. 보라의 볼에, 보라의 온 얼굴에 잘게 입을 맞추었다. 깨어나면 왜 자기 잘 때 했냐고 서운해하겠지만.
보라야, 우리 잘 먹고 잘 살자. 몰래 입을 맞추면서. 몰래 미래 계획도 세우면서. 주에 삼 일은 새벽에 초밥을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