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이가 처음 눈에 담겼던 이유는 무심한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 마음에 담긴 이유는 웃는 얼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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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릴없이 교실을 둘러보다가 무심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있는 저 아이가 눈에 담겼다. 한 번 보이니 어느새 내 눈은 늘 무심한 얼굴인 저 아이를 쫓고 있었다. 궁금했다. 볼수록 궁금해졌다. 저 무심한 표정은 무슨 생각을 담고 있을까. 저 읽을 수 없는 눈이 바라보고 있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다가가기 힘들었다. 밝고 친근하여 붙임성이 좋다는 소리를 늘 듣던 나였다. 그런데 저 아이는 조금 힘들었다. 표정 때문일까,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나랑 친하지 않으니까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데…. 그러니까, 내가 다가가 말을 걸어도 그저 짧은 대답을 하고 무심히 시선을 돌릴 것 같았다. 내가 뜬금없이 말을 걸어도 ‘갑자기 나한테 왜?’와 같은 짧은 의문조차 갖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향한 저 아이의 무심함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무서웠다. 내가 혼자 상상한 반응이었지만 그것이 너무 겁났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내 주변을 둘러싼 친구들과 대화하며 틈틈이 그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도 몰랐다. 내가 그 아이를 종종 바라본다는 사실은.
뒷자리 친구와 이야기를 하려고 몸을 돌리다가 중간에 시선이 멈췄다. 그곳에는 그 아이가 다른 친구와 대화하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 아이에게 가지던 관심과는 다른 감정이 터져 올라왔다. 예뻤다. 아니 사실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단지 뭔가 복잡하던 머리속이 차갑게 가라앉았고 귀가 멍해졌다. 그 이후에는 자꾸만 그 아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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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진.”
그 아이를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나는 빠르게, 그렇지만 내가 이 소리만 기다렸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만큼 평온하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선생님의 부름에 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 속에 쓰인 시를 낭독했다.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각에 집중했다. 이것은 내가 수업시간에 그 아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나는 앞에서 두 번째 줄이었고, 장소진은 옆 분단 맨 뒷자리였으니까.
늘 느긋해 보이는 아이였다. 늘 차분하게 행동했다. 아침에도 여유롭게 학교에 도착해 교실 뒤편의 사물함으로 향하는 아이였다. 교과서를 꺼내 오고, 가방을 정리하고, 책을 읽거나 하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다들 급하게 뛰어나가는 4교시 끝 종에도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게 교과서를 덮고, 필통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과 무리 지어 느긋하게 급식실로 향했다. 나는 종이 치면 시끌벅적하게 뛰어나가는 무리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이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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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가 시작되고 두 달 만에 자리를 바꾼다고 했다. 떨렸다. 확률은 매우 낮았지만 그 아이와 자리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사실 너무 가까워지지는 않았으면 했다.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지만, 나는 그 아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짝이 된다면 그 외향적이고 활발하다는 김세정이 조금씩 작아지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아니 일주일…. 아니다. 이틀을 채 못 버티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질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냥 조금 바라보기 편한 위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나는 1분단의 뒷 쪽에, 장소진은 2분단의 중간 정도 자리에 걸렸다. 딱 내가 원하던 거리와 위치였다. 운이 좋았다. 이전과 달리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을 보다가도 자연스럽게 장소진을, 음… 그 아이를 쳐다볼 수 있는 위치였다. 앞을 보면서 시야에 걸려있는 아이의 뒤통수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그런 위치였다.
간질거리는 이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도대체가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오히려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을 보다가 틈틈이 보던 뒤통수였는데, 이제는 정신을 차리면 그 둥글고 까맣고 긴 머리를 보고있었다. 나는 내 시선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며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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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큰일 났다. 이게 어디 갔지?
분명 어제 집에 갈 때 치마 주머니에 잘 넣어뒀는데, 학생증이 없어졌다. 집에 꺼내 놨나? 생각해보았지만 그런 기억은 없었다. 교문 앞에서 학주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온갖 주머니와 가방을 뒤적거릴 뿐이었다. 혹시 몰라 집에 다시 다녀와 보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벌점 받으면 엄마한테 문자 가는데. 큰일 났다.
“야, 이거. 네 거 맞지?”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던 차에 숙여진 시선 안으로 하얗고 네모난 것이 들이밀어졌다.
내 학생증!
급하게 고개를 든 나는 너무 놀라 눈만 커질 뿐 몸은 굳어버렸다.
“네 거 아냐? 이거 찾는 거 아니었나….”
“아니, 맞아. 맞아!”
살짝 웃는 모습에 또 굳어버릴 뻔했다.
“어제 집에 가는데 길에 떨어져 있던데. 장미아파트 입구에. 너 거기 살아?”
“응…. 너도?”
학생증을 받아 들고 얼떨결에 나란히 서서 교문을 통과했다. 함께 운동화를 슬리퍼로 갈아 신고 교실로 올라갔다. 함께. 함께 교실을 들어갔다.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 학생증을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 어디에 사는지. 오늘의 나처럼 학교에 도착해서야 잃어버린 것을 알아챌까 봐, 이렇게 교문 앞에서 찾고 있을까 봐 고민하다가 경비실에 맡기지 않고 들고 왔다든지.
그 아이와 말을 튼 이후에도 딱히 교실에서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가끔 복도를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서로 잠시 쳐다보다가 스쳐 지나갔다. 눈이 마주치는 것도 나 때문이라 생각했다. 나는 시야에 장소진이 들어오면 눈이 저절로 그 아이에게 갔으니까. 내 시선이 느껴지니 장소진도 날 쳐다보게 되어 눈이 마주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은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함께 걸어갔다. 깜박하고 우산을 챙겨오지 못한 비 오는 날, 장소진이 우리 집까지 날 데려다주기도 하였다. 같은 아파트라 데려다줬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래도 우리 동까지 데려다주었으니까…. 나는 인사하고 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다시 되돌아 나와 자신이 사는 동으로 걸어가는 장소진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키가 커서 그런가, 그림같았다. 나는 추적추적 비가 오는 조용한 밤의 장면에서 점점 멀어져 작아지는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겁이 났다. 나는 주인공이 사라지는 씬이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전에 급히 탑승해 12층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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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하는 길에 꽤나 자주 장소진을 마주쳤다. 그렇게 반년이 흐르고 어느새 약속처럼 귀갓길을 함께하게 되었다. 덕분에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슬슬 중간고사의 압박이 오는 시기가 되었다. 나와 장소진은 둘 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 야자만 채워서 적당히 공부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집에 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함께 아침 일찍 학교에 가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시험 전 2주 동안 아침 일찍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나 학교에 갔다.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등굣길도 함께하게 되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서로의 무리가 있지만 고등학생의 일상 대부분인 학교의 시작과 끝은 서로가 되었다.
일 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장소진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예상치 못할 만큼 가까워졌다. 이제는 장소진을 보면 머리가 혼란스럽지 않았다. 이유를 알았고, 그것을 받아들였으니까. 그리고 어색하고 미숙하지만 굳이 숨기지 않고 행동하기로 했으니까.
그럼 장소진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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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 부름에 막 포크로 케이크를 집어 먹으려던 장소진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고 결국 또 이 눈빛에 먼저 시선을 피해버렸다.
“넌 뭐 좋아해?”
“뜬금없이 뭐야… 어떤 걸 물어보는 거야?”
“아니, 그냥… 아무거나. 너 뭐 좋아하냐고.”
너네 집 강아지 말고.
내가 급히 덧붙인 말에 바로 대답을 하려고 벌어진 장소진의 입이 다시 닫혔다. 장소진은 질문이 너무 크다며 범위를 정해달라고 재촉했다.
“아 진짜 아무거나 말하면 되지, 좀!”
“왜 성질이야, 김세정.”
장소진은 내려놓았던 포크를 잡으며 아까 먹으려고 떠놓은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천천히 우물우물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나는 괜히 긴장이 되어서 테이블 밑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고 조용히 침을 삼켰다.
“그럼 난 초코케이크.”
“뭐야! 그럼 초코 시키지 왜 레드벨벳 시켰어?”
“음…, 그냥? 그리고 너 아까 초콜렛 너무 먹어서 물린다며.”
뭐야 이게…. 결국 대화를 흐지부지 끝내고 어제 엄마랑 싸운 이야기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두세 시간을 잔뜩 떠들었다. 마지막엔 휴대폰 속의 밤돌이와 달님이 사진을 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소리를 30분 정도 반복하는 장소진을 열심히 보다가 카페를 나왔다.
초코케이크…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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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진과 헤어지고 혼자 놀이터에 왔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어 조용했다. 군데군데 노란 가로등만 켜져 있었다. 나는 미끄럼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야, 나는 너 좋아해.”
별조차 보이지 않는 텅 빈 하늘에 고백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