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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s Come True



Dreams Come True


 

 

 

 

 

 

새벽은  신기한 시간이다. 새벽에 우리는 평소와 달라진다.  감성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용기를 얻어 낮에는 하지 못할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 못하고 꽁꽁 감추고 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보기도 하고 잊고 싶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슬퍼하기도 한다. 밝은 대낮뿐만 아니라 밤과도 새벽은 다르다. 누구는 그것이 새벽이 아니라 술의 힘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러는 것은 새벽의 힘일까 술의 힘일까?  모르겠다. 일단 평소와 다르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새벽의 힘을 빌려 머릿속과 입가를 맴돌던 말을 무작정 뱉었다. 뒷일은 아침의 내가 감당하겠지. 새벽의 내가 알게 뭐람.

 

 

 

, 우리   번만 볼까?

 

 

 

 

 

 

 

-

 

 

 

 

 

 

 

신보라와 자는 꿈을 꿨다.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릴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신보라의 하얀 맨살을 쓸어내리는 감촉이 생생해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한참동안이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도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꿈이 확실한  같아 다행이었다. 침대도 물론 비어 있었다.  침대가 아니라 신보라 침대에서 잤다는  문제지. 신보라랑 자는 꿈이라니. 존나 말도 안되고 있어서도  되는 일이었다. 끔찍하다고 말하며  번이고 세게 고개를 젓고 뺨도 내리쳤지만 이상하게 자꾸 꿈속에서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하얗고 뽀얀 신보라의 , 예쁘게 떨어져내리는 어깨,  손에 조금  넘치던 가슴과  도화지 같던  그리고 적당히 근육이 있어 탄력 있는 허벅지까지. 그리고  보던 신보라의 약간 눈물이 맺힌 . 씨발, 꿈을 꿔도 이딴 꿈을 . 벌떡 일어났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러고 보니 어제 기억이 온전하지 않았다. 연말이라 회사 송년회에 참석했고, 적당히 빠질 요랑으로 잔을 빼다가 꼰대 상사한테  걸려서 꼼짝없이 마셨다. 주량을 조금 넘긴  같다고 생각해서 그만 마신다고 했지만  상사도 꽤나 취해 평소보다  강권했고 주변에 말리는 사람도 없어 주는 술을  받아마셔야 했다. 장대리한테  가라고 인사한 것과  사원이 내게 괜찮냐 물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후론 필름이 끊겼다. 집에 어떻게  건지, 그리고   방이 아닌 신보라 방에서  건지 확인이 필요했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신보라는 소파에 앉아 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분명 신보라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보자마자  벗은 모습이 둥둥 떠올라서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해 속을 게워냈다. 신보라 벗은 몸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런 상상하는 내가 끔찍하고 변태 같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한참을 변기를 잡고 웩웩거리니 거실에서 신보라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토하느라 대답이 없으니 등이라도 두드려주냐 묻길래 급하게 됐다고 답했다. 입을 헹구고 다시 거실로 나가니 신보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았다.

 

 

 

"괜찮아?"

 

",  괜찮아. 숙취 오져."

 

"그러게 누가 술을 그렇게 무식하게 퍼마시냐. 정신 놓을 정도로."

 

", 마시고 싶어서 마셨냐 내가?"

 

"주는 술을   받아먹어 멍청아."

 

"됐어. 술의 ㅅ자도 꺼내지 .  먹어?"

 

"비빔밥. 너도 ? 먹을래?"

 

"됐어. 국물이 필요해. 라면 있냐 집에?"

 

 

 

존재 여부만 물었을 뿐인데 신보라는 그대로 부엌으로 가더니 냄비를 꺼내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가 라면을 더럽게  끓이는  알아서 신보라는 내가  마시고  다음 날이면  이렇게 라면을 끓여준다. 이럴  쟤랑 사는  좋다.  물론 월세 반반 나눠  때도 좋고. 보증금을 쟤가  냈을 때도 좋았다.  대신 신보라는 라면 끓여준 대가로 그날 저녁에  맛있는  내놓으라 했다. 처음엔 겨우 라면 끓여주는  가지고 생색낸다며 치사하다고 툴툴거리던 나도 어차피 신보라가 얘기하는 맛있는 것이 작게는 떡볶이에서 커봤자 치킨 혹은 닭발이고 나도 함께 먹기 때문에 이제는 불만 없이 사주곤 한다.

 

 

 

"오늘 라면값은 뭐야?"

 

"미미야, 그거 하루 미루기 쿠폰 같은  없어?"

 

" 그런  어딨어. 오늘  쓰면 땡이지."

 

"알았다. 오늘은 공짜 라면이다."

 

"뭐야? 어디가?"

 

"오늘? 그냥 누구  만나게."

 

"누구?"

 

"있어. 비밀이야."

 

"그때  고딩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라면이나 먹어. 그런  아니야."

 

"그런  아니면, . 누군데. 네가 최근에 공들이던   눈꼬리  처진 여자애 말고 누가 있는데?"

 

"눈꼬리  처진 여자애 아니고 세정이야. 김세정."

 

" 이름은    아니고."

 

"? 내가 누구  만났으면 좋겠어?"

 

"네가 누굴 만나도 상관은 없는데 고딩은 아니다."

 

 

 

신보라는  지보다 어린 애들만 골라서 만났다. 그리고 눈꼬리가  쳐져가지고 불쌍한 강아지같이 생긴 애들만 만났다. 동물은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면서 지금까지 신보라가 만난 여자들을 보면 죄다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걔네는 죄다  취향이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로 나랑 신보라는 우리가 이렇게  지내는  서로 취향이 정반대라 겹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나는 눈이  째지고 세게 생긴 섹시한 고양이상을 좋아했고 신보라는 눈꼬리가  처진 귀여운 얼굴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연상의 언니들을 좋아했고 신보라는 지보다 어린 애들만 골라서 좋아했다. 고딩 때는 우리보다 아래 학년이랑, 대학생 때는 지가 과외하던 3 학생이랑 사귀다가 깨지고 나서  학년 후배랑 사귀었고 직장 와서도 자기보다 어린 애들하고 만났던  같다. 마지막 연애를 끝내고 나서는 한참을 연애를  하더니 얼마 전에 답지 않게 휴대폰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외출도 잦아져서 만나는 사람이 생겼냐 물었더니 주저하면서 고딩이랑  타는  같다고 했다.  미친년아! 그래 이제 너도 새로운 사람 만날 때가 되었다며 응원한다 말하려 했더니 신보라 입에서 나온 뚱딴지같은 말에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얼굴  보여 달라는  요구에 신보라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 나는   마디 말을 했다.

 

 

 

"존나  취향이네."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브이를 하고 있는 애기티를  벗은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있었다. 신보라 취향 하고. 누굴 닮았다 싶어 계속 들여다보니 누군지 떠올랐다. 신보라가 고딩  사귀던 우리 아래 학년 여자애랑 눈매랑 분위기가  닮았다. 신보라는 전교 회장이었다. 나는 이과였고 신보라는 문과여서 우리는 얼굴  일이 거의 없었고 2  복도를 지나가다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전교 회장 후보 포스터에서 처음 신보라 얼굴을 봤다. 1반에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한다는 애가 쟤구나 싶었다. 그리고  회장 선거에서 기호 1번에 도장을  찍었다. 그냥 회장  얼굴이었다. 공부  하고 성격도 좋다더니 정말 반듯하고 착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회장 선거를    학원에서  애와 마주쳤다. 같은 학원인 줄은 몰랐는데 얼굴을 알게 되니  번에 알아볼  있었다. 그래봤자  애는  모를 테니 그냥 스쳐 지나가는  다였지만. 같은 학원이었지만 서로 듣는 수업이 달라서 복도에서 말고는  애를   없었다.   수업을 하는데 친구들이   이야기를 했다. 신보라가 압도적인  차이로 전교 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미미야, 너는 누구 뽑았어?"

 

"나는 그냥 1 뽑았는데."

 

"그럴  알았어. 귀찮아서 그냥 공약 읽지도 않고 뽑았지?  1번이 누구인지는 알아?"

 

"됐어.   물어보냐? 정미미가 뻔하지."

 

", 알고 뽑았거든?"

 

 

 

평소의 나를 너무  아는 친구들을 뒤로   학원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쉬는 시간이면  그곳에  담배를 피우곤 했다. 친구들한테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급하게 가야 했지만 그곳에  담배를 입에 물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날에도 평소처럼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는데 어디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거친 숨소리와 듣기 힘든 야시시한 소리까지. 듣자마자   있었다. , 누군가 신성한 학원 비상계단에서 격렬하게  맞추고 있구나. 평소 같았으면 속으로 욕하고 나갔겠지만     평소와 다르게 궁금증이 도져 천천히 계단 위로 올라갔다.  계단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격렬하게  맞추는  사람이 보였다. 놀라웠던 것은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고,   여자였다는 점이었다. 우리 학교에 레즈는 나밖에 없는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단말야? 누군지 궁금하다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뒤돌아 내려가려 했는데 깜빡하고 끄지 않은 담배에 손을 데이고 말았다.  뜨거! 그들의 숨소리와 입술이 맞닿는 소리만이 맴돌던 적막한 비상계단을 하이톤의  목소리가 가득 채웠고 시발 좆됐다라고 생각하던 나는 천천이 서로에게서 떨어지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춘추복 조끼 차림에 교복 와이셔츠를 양팔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하얀 얼굴에 립스틱이 잔뜩 번진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신보라와.

 

 

 

먼저 .

 

 

 

 애의 낮은 목소리에 벽에 기대있던  명은 고개를 숙이고  옆을 빠르게 스쳐지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말은 비상계단에 나랑 신보라 둘만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도망칠까 아니면 별거  봤다고 둘러댈까 고민을 하는 사이 신보라가  앞으로 다가왔다. 눈만 깜빡이고 있는  보고 신보라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해보았다.  어디 가서 오늘   이야기하면 죽여버릴 거야? 아니면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할까? 침을 꿀꺽 삼키는  보며 신보라는 입을 열었다.

 

 

 

틴트 있니?

 

 

 

그게 나와 신보라의  대화였다. 주섬주섬 교복 치마에 손을 넣는  보다가 신보라는 걷어 올렸던 셔츠를 내려 단추를 채우며 와이셔츠 끝부분으로 입술 주변을 닦기 시작했다. 번진 립스틱이 닦여 다시 말끔해진 신보라의 얼굴을 보며 나는 틴트를 교실 책상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처하듯이 말하는 나에게 신보라는 그럼 교실에 같이  테니  번만 빌려달라고 말했다. 친구도 많은데  나한테 빌려달라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꼼짝없이 그대로 신보라와 우리 교실로 함께 갔고 틴트도 빌려줬다.  원래 틴트 남들이랑 같이  쓰는데. 당장 버리고 새로 사야겠다고 다짐하며 불편해하는 나를 보고 신보라는 고맙다고 말했다. 안녕하고 보내려는데 신보라는  귀찮게 질문을 했다.

 

 

 

정미미.   뽑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먼저 물었어야 하는데 그때의 나는  멀리서 걸어오는 선생님을 보고 급하게 답하곤 신보라를 보냈다.

 

 

 

. 기호 1.

 

 

 

 

 

신보라와  번째 만남은 생각보다 금방 다가왔다. 신보라가 당선된   학교 행사는 체육대회였고 체육부장이었던 나는 체육대회가 끝나고 뒷정리를 도와야 했다. 뒷정리가 대충 마무리되고 다들 짐을 싸서 학교를 떠날  나는 마지막으로 창고에서 나와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후문으로 향했다. 보는 눈도 없고 조용해서 내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하나였다. 담배를 꺼내 물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어쩐지 상쾌한 기분이라 필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학교에서도 ?

 

 

 

신보라는 무표정으로  말을 내뱉더니  옆으로 다가와 벽에 기대섰다. 그때  날처럼 단정한 교복 차림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마린룩 반티 차림이었으면서.  끝과 손목 끝까지  잠근 셔츠의 단추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답엔  관심이 없는  같아서 대충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발끝으로 애꿎은 땅만 툭툭 치며 물었다.

 

 

 

"교복으로 갈아입었네?"

 

"교복이 제일  어울린대."

 

 

 

이해를  했다는 표정을 지으니 신보라는 그때 네가 봤던 …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대충 그렇구나 하고 넘겼더니 신보라는 말도  하고 그냥 콧노래만 불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신보라가 불편했다. 평소에도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신보라와 나는 고작  번째 보는 사이였고  만남도 무척 당황스러웠고 대화도 많이 하지도 않아 나는 여전히 신보라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왔다.  갑자기 이렇게 친한 척하는 건지, 원래 이런 성격인 것인지, 나랑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런 복잡한 심경이 표정에 드러난 것인지 신보라는 갑자기 나를 보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정미미.  그렇게 쳐다보지 ."

 

"뭐가?"

 

"  취향 아니거든?"

 

"무슨 뜻이야?"

 

"네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볼 필요가 없다는 거야. 내가  좋아할 일은 절대 없어."

 

 

 

와다다 말을 쏟아내는 신보라를 보니 어쩐지 조금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때야 나는 얘가  나한테 말을 붙였는지   있었다. 하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황스러울   일이었다. 바르고 성실하고 공부도  하는 전교회장인데 생판 모르는 애한테 애인이랑 키스하는 모습을 들키다니. 그것도 남친도 아니고 여친이랑. 안절부절 했을 신보라를 안심시켜줄 필요성을 느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신보라.  진짜 어이없다.

 

 

 

신보라는 생각보다  당황했다. 어쭈 귀여운 구석이 있잖아? 나는 주먹을  쥐고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는 신보라에게 다가가 신보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도  취향 아니야.

 

? 뭐라구?

 

 

 

나를 보며 멍청한 표정을 짓는 신보라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신보라 너도  취향 아니라고.  신보라. 나는 말야

 

 

 

나는 가슴  예쁜 언니가 좋아.

 

 

 

  말에 신보라는  터지며  어깨를 쳤고 나는 아프다며 조금은 틱틱거리다 신보라와 함께 웃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베프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대학도 같은 곳으로 가게 되어 자취도 함께 했고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꼬박 10년을 붙어 다녔다. 징글징글하다 정말.

 

 

 

 

 

-

 

 

 

 

 

"신보라, 언제 나와?"

 

"좀만 기다려. 거의  끝났어."

 

" 급해 죽겠다고."

 

"그냥 들어와서 싸라니까."

 

" 샤워하는데 내가 거기서 어떻게 . 쪽팔리게."

 

"우리 사이에 쪽팔릴   있어."

 

",  진짜   같아.   입었어?"

 

" 정미미 진짜 재촉 ! 됐냐?"

 

 

 

 

 

화장실  앞에  있다가 문이 벌컥 열리길래 그대로 들어가려 했더니 검은색의 야시꾸리한 속옷 차림의 신보라가 머리를 수건으로 틀어 올린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벗은 신보라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미 벗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괜히 창피해서   입었다면서 이게  입은 거냐고 타박했더니 가릴   가렸는데 뭐가 문제냐고 당당히 묻는다.

 

 

 

! 부끄러운 줄도 모르냐!

 

 

 

 소리를 지르고 나오라고 했더니 신보라는 내가 싫어하는  능글맞은 표정을 하고 실실 웃으면서 점점 다가왔다. 화장실의 뜨거운 바람이 얼굴로  불어와 여기저기가 후끈거렸다. 신보라는  어깨에 팔을 걸치곤 우리 미미 간땡이가 많이 작아졌다며 킥킥거렸다. 돌았냐며 기겁하고 신보라의 팔을 뿌리치고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앉으니   같았다. 아직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  화장실에서는 향긋한 바디워시 향이 수증기와 섞여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옛날에는 신보라가 홀딱 벗고 있어도, 실제로 그런 적은 없지만, 신보라  가슴 존나 작다 역시   취향이 아니야 따위의 말로 시작해 내가 그동안 만나온 예쁜 언니들의 몸에 대해 연설을 늘어놓을  있을  같았는데 막상 신보라가 반쯤 벗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뭐야 정미미?  지금 무슨 생각한 거야? 볼을   치고 손을 닦고 나가니 신보라는 여전히 속옷 차림으로 거실을 활보하고 있었다. 새하얀 배와  그리고 허벅지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정미미,  지금 어디보냐?

 

 

 

신보라 가슴. 생각보다  작다. 씨발. 나는 콧김이 거세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젓고는 당장 가서  주워 입으라고 이야기했고 신보라는  반응이 재밌는건지 아니면  있을 데이트에 설레는지 자꾸  이름을 부르며 자기 속옷이 어떠냐 물었다. 저게 평소엔 꽁꽁 가리고 나오면서 오늘은  저러는지 모르겠다. 괜히  보라고 저러는  같기도 하고.

 

 

 

"앵간해."

 

",  그런 말을 쓰냐."

 

" 고딩이랑 사귀려면 이런   알아야 ."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아는  하지 말고. 그리고 사귀는  아니라니까. 어때?"

 

"그걸  나한테 물어?"

 

"그럼 여기에 너밖에 없는데 누구한테 물어봐?"

 

" . 빨리 들어가서  입어. 봐줄 만해."

 

 

 

건성으로 대답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신보라는 입을 씰룩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는데 약간 욕이 들린  같기도 하다. 근데 신보라는 분명 들어갔는데 아직도  앞에는 속옷 차림의 하얗고 뽀얀 신보라의 형체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게  좆같은   때문이라 생각하며 나는 정신 차려 정미미를 외치며 속으로  번이고 신보라를 지우려 애썼다. 그렇게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신보라와의 사투는 시끄러운 휴대폰 소리로 인해 끝이 났다. 휴대폰에  있는 이름을 보고 나는 인상을 찌푸리곤 휴대폰을  멀리 던져두었다.

 

 

 

"누군데  받아?"

 

"누구긴 누구야. 동근이지."

 

"뭐야, 요즘  좋아?"

 

"헤어질 거야. 역시 남자는  만나겠다."

 

"동근이 불쌍해. 내가  처음부터 받아주지 말랬지?"

 

"귀찮게 계속 들이대잖아.  정도 만나줬으면   만큼 했다."

 

" 진짜 나쁜 년인  알지?"

 

" 정도 생겼으면 그래도 ."

 

"잤어?"

 

"미쳤냐?  남자랑  .  끔찍하게  그런 얘기해."

 

"키스는?"

 

" 코멘트."

 

"알았다. 그래서 언제 쫑내게?"

 

"크리스마스랑  생일 사이 어디쯤에."

 

" 질질 끌어. 어차피 헤어질 건데 크리스마스에는  만나?"

 

"크리스마스 혼자 보내기는 싫어."

 

"아니야. 혼자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죽는다 진짜."

 

 

 

이를 악물고 얘기하는  보고 신보라는 웃으며 다녀오겠다고 말하곤 집을 나섰다. 쟤는  얘기를 어떻게 웃으면서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나랑 친구로 지내는지 모르겠다. 너무 바보같이 착해서 그렇겠지 신보라가.

 

 

 

 

 

 

 

-

 

 

 

 

 

 

 

 결혼해.

 

 

 

 

 

주머니 속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넣어놓고 언제 줄지 고민하며 만지작거리던 스물네  정미미는 크리스마스날 여친한테 보기 좋게 차였었다. 그냥 차인 것도 아니고 결혼 통보를 받았다.  언니는 나보다  학번 위의 대학 선배였고,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여자친구였다. 정체성을 확실히  사람이랑만 사귀었던 신보라와 달리 나는 그냥 내가 꼴리면 레즈든 헤녀든  가리고 꼬셨다. 성공한 적도, 실패한 적도 있지만 성공률이 높았다고 자부한다. 나와 달리 신보라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사람과   확률이 적다고 본인이 판단하면 다가가지 않고 잊으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나는 그게 답답해서  얼굴이면 가서 꼬셔도 반은 넘어온다고 이야기하곤 했으나 신보라는  번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언니도 신보라에게 그런 사람  하나였다. 3 과외순이랑 헤어지고 나서 신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숟한 소개팅 제의를  거절하고 한참 동안 연애를  했다. 그러다 어느  갑자기 나에게 자기가 활동하는 인문학 동아리 부원  우리  선배가 있는데 혹시  사람이랑 친하냐 물었다. 학번 차이는  나지만 같은 수업을 들었었고  행사에서도   얼굴을 봐서 익숙한 이름이었다. 알긴 아는데 별로 친하지는 않다는  말에 신보라는 그렇구나 하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한테 관심 있어?

 

 

 

맞다 아니다 이런 대답은 하지 않고 신보라는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놓고  언니는 강아지상도 아니고 그동안  취향 바운더리에서 벗어난 사람 같은데 어디가 좋냐는  물음에 신보라는 조곤조곤  언니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책과 영화 취향이 비슷한  같아 눈길이 가기 시작했고 어쩌다 대화를 나누었는데 말도  통해서 좋았다고 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신보라를 보는  오랜만이라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 언니 지금 남자친구 없을걸?"

 

"그렇다고 여자친구를 만들 생각은 없을걸?"

 

"이봐 친구, 용기를 가져.  정도 얼굴, 몸매에 성격이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꼬실  있어."

 

"……."

 

", 물론 나는 빼고. 암튼 그래서 도와줘?"

 

"됐어.  도와줘.  해볼 생각 없다니까. 괜히 물어봤어 너한테. 입이 방정이지."

 

"나만 믿어.  언니가 확실히 밀어준다."

 

 

 

 

 

신보라는 됐다고 했지만 보니까 싫은 눈치는 아니라 나는 작정하고  언니랑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친해져야  도와주든 말든   있으니까 친해지려고  언니 듣는 수업도 청강 가고 괜히 과방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그러다 밥도 먹고 그랬다.  신보라 도와주려고 그랬던 건데 그러다 내가 신보라 통수를 제대로 쳤다. 나도  언니를 좋아하게  거다. 사실  언니가  취향은 아니었다. 세게 생긴 것도 아니고 섹시와도 거리가 멀었다. 내가  언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신보라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똑같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어떻게 우리 취향이 겹칠 수가 있지? 이렇게 다른데? 그러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언니에 대한 마음이 커졌다. 신보라가  언니에 대해 물으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일부러  언니를 피해 다니기도 했는데 언니가 나를 귀여워해서 자꾸 만나자고 졸랐다. 그러다 결국 나는 사고를 쳤다.  마시고  언니랑 키스를 했다. 처음엔 내가 먼저 했는데 나중엔 언니도 좋아서  하자고 했던  같기도 하다. 그리고 다음  언니는 나한테 울면서 고백했다. 나를 좋아하는  같다고. 평소 같았으면 역시 나는  꼬시는 사람이 없다고 기세등등하며 행복해 했을 텐데 그때는 아니었다. 분명 좋은데, 언니도 내가 좋다니까 너무 좋은데 그러기에 신보라가 걸렸다. 근데도 나는 결국  언니랑 사귀었다. 자연스럽게 신보라가 언니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 이상 내가  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일은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신보라는  처진 어깨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소파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아무래도 언니한테 애인이 생긴  같아.

 

 

 

 상황에 내가  애한테 무슨 말을   있겠는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신보라를 바라보고만 있었고 신보라는 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언니가 읽는 책과 보는 영화 그리고 대화 주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랑 이야기가 급격히 늘어났고 표정도 훨씬 밝아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신보라는 몸을 일으켜 한숨을  쉬더니 앞에 멍하니  있는  보고는 웃으면서 내가 이렇게  거라 했지 하곤 자조적인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서 앞에 있는 나를   안아주더니 어깨를 툭툭치고 자기는 괜찮다며 방으로 돌아갔다. 신보라가 그때  눈을 보고  말을 나는 아직까지 잊을  없다.

 

 

 

 

 

네가 많이 노력해줬는데 고맙다.

 

 

 

 

 

차라리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나쁜  소리를 듣고 머리채라도 잡히는 것이 속이 시원할까 싶었지만 신보라가 나에게 실망하고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어쨌든 신보라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고 나는 신보라와 멀어지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해도 신보라는 분명  이야기를 듣고  나를 이해하고 축하한다 말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게 싫어서 신보라한테 끝까지 말을  했다. 내가 그해 크리스마스를  언니와 함께 보낼  신보라는 혼자 우리 자취방에 있었다. 다음날 집에 들어갔을  바닥을 굴러다니는  맥주   개와 과자 봉지, 그리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신보라의 작은 뒷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번이고 외쳤었다. 신보라 미안해. 정말 미안해.

 

 

 

 

 

 

 

 

 

-

 

 

 

 

 

동근이랑 헤어졌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껴서 1 2일로 놀러 가자더니  차가 멈춘 곳은 호텔 앞이었다. 평소에 내가 철벽을 치긴 했지만 치사하게 이렇게 통수를  줄은 몰랐다. 아니 이건 치사한  아니라 인성 문제였다. 미친놈이 거짓말을 하고 호텔로 끌고 ? 도착지를 알고 심기 불편한 나를 보고 안절부절하며 어떻게든 포장하려던  모습 때문에  정떨어졌다. 찌질하기까지 .  여기로 데려왔냐니까 크리스마스에 분위기  내볼까 해서 준비했는데 마음에  드냐고 묻길래 대답 대신 뺨을 냅다 갈기고는 차에서 내려버렸다. 쫓아와서 손목을 잡는데  손을 뿌리치고 돌아봤더니 그제야 속여서 미안하다고 빌었다.

 

 

 

"미안해. 근데 나도   많아."

 

"무슨  ?"

 

"  사랑하는  맞아?"

 

 

 

아니라서  말이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 네가 너무 좋아서 같이 있으면 손잡고 싶고 안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그래. 근데 너는? 가끔 내가 손잡으면 은근슬쩍 밀어내고 뽀뽀하고 바로  닦고 그런  내가 모를  알았지? 그럴 때마다 나도 상처받았어."

 

"그래서?"

 

"나는 네가  사랑한다는 확신이 필요해."

 

"동근아."

 

 

 

 보는 서운함 가득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는 이를  깨물고     또박또박 내뱉었다. 내가   있는  최대한 단호하고 경멸에  목소리로.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 그런 거라면 나는  사랑  하는  같다. 앞으로 연락하지도 말고  눈앞에 나타나지도 ."

 

 

 

 

 

그리고 그대로 뒤돌아 일부러  굽소리를 크게 내며 또각또각 걸어갔다.  정도로 감정 실어 걸었으면  떨어진  눈치채고 쫑났다고 느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동근이는 생각보다  멍청했고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느껴졌다.

 

 

 

정미미!  지금 잘못된 선택하는 거야! 우리 이대로 헤어지는  아니지?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가 아닌 어정쩡하게 서서  보고 거의 울다시피 하는 동근이에게 완벽히 꽂힐  있도록 아까 동근이의 목소리보다   목소리로 소리쳤다.

 

 

 

 키스 존나 못해. 근데 내가 너랑 자고 싶겠냐? 당장 꺼져!

 

 

 

 길로 택시를 잡아탄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신보라에게 카톡을 보냈다.  헤어짐. 집으로 . 며칠 전에 크리스마스에 1 2일로 여행 간다는  말에  번이고 정말 집에  들어오냐고 물을 때마다 그렇다고 얘기했었는데 이렇게 택시 타고 집에 가고 있을  몰랐다. 신보라도 집에 돌아오면 깜짝 놀랄  분명하다. 지가 아무리 같이 보낼 애인이 있어도  애인이 고딩인데 외박까지는 못할 터였다. 밤늦게 들어오면 같이 술이나 한잔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나 해줘야겠다 싶어서   편의점에서 맥주  캔이랑 안주를  사서 비닐봉지를 덜렁덜렁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분명 방금 헤어졌는데 슬프거나 우울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랫동안 얹혔던  내려간  속이 시원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남자를 만나나 봐라. 완식이랑 사귀는 신보라가 부러워졌다. 신보라 여친  꼬맹이도 좋겠네. 호구같이 착하고 배려심도 쩔고 돈도 많고 얼굴도 연예인 뺨치는 여친있어서. 생각해보면 신보라는 연애 상대로  괜찮은 사람인  같다.  외적인  말고 내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섬세하고 다정하고 유머감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진중한 면도 있고 무엇보다 의지할 만한 사람이니까.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도 신보라에겐 술술 털어놓게 되곤 했다.  말에 적당히 반응해주면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내가 원하던 대답을 그대로 해줬다. 마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그리곤 그렇게 위로해주고  자기 생각을 덧붙였는데 그건  옳은 해결법이었다. 그래서  신보라를 거의  퍼센트 신뢰하는 편이다. 고등학생 때는 성적 혹은 부모님과의 갈등을, 대학생 때는 인간관계와 진로 문제 그리고 요즈음에는 연애문제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에 대해 신보라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고 10 전이나 지금이나 신보라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도와줬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렇게 신보라에게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신보라는 정작 나한테 자기  얘기를 별로  하는  같았다. 워낙 둥글둥글한 성격에 긍정적이라 본인 입으로는 자기가 스트레스도   받고  이겨내는 편이라 말하지만 분명 10 동안 털어놓을 고민 하나쯤은 있었을 텐데 신보라가 나한테 먼저 와서 구구절절 자기 고민 이야기한 적은 없었던  같아 어쩐지 서운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친구는 이러라고 있는 거고, 심지어 우리는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할  없는 서로의 비밀까지 공유하고 있는데 신보라는  나한테 자기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거지? 내가 신보라에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냥 같이 사는 사람? 제일 친한 친구?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이런저런 생각들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근처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돌렸다. 들어가자마자 닭발에 오뎅탕을 시키고 먼저 나온 소주를   들이켰다. 대충 둘러봤는데 혼자 마시는 사람은  혼자인  같아 괜히 서러워졌다. 씨발 크리스마스 혼자 보내는  싫다. 휴대폰을 꺼내 주소록을 뒤져보는데 회사 사람들 거르고 보니 가족들이랑 연락  한지 오래된 대학 동창들 그리고 얼굴도 가물가물한 고딩  친구들이 전부였다. 구여친 번호도   있긴 했는데 내가 차놓고 다시 부르는 것도 웃기고  사람들을 부를 바엔 혼자 마시는  나았다. 결국  남은   사람 뿐이었다. 아무리 외로워도 애인이랑 놀고 있는 사람 방해하는  아닌  같아서 그냥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소주  잔을 들이켰다. 신보라 요즘 야근하느라 바빠서 얼굴   지도    같은데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양보해야지. 술도 오늘따라 드럽게 맛없네. 그렇게 안주  접시와 소주  병을 스트레이트로 해치우니 시간도 늦고 추워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굽이 높아서 그런지 발이 너무 아팠는데 심지어 걷다가 삐끗해서 발목까지 시큰거렸다. 술기운에 알딸딸하기도 해서 홧김에 신발을 벗고 양손에 힐을 들고 달랑거리며 걸어가다  앞에 도착했을 즈음 익숙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키고는 들어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양손을 흔들며 주차를 끝낼 때까지 쳐다보고 있으니  주인이 급히 내렸다.  떨어지는 코트를 입고 예쁘게 꾸민 신보라다. 웃으며 인사하는  보곤 신보라 표정이 잠시 굳었다. 신발 벗고 있어서 취하고 추한  한다고 화낼까 싶어 알았어 알았어 하고 손을 휘저으며 힐을 내려놓고 신으려다 중심을 잃어 그만 아스팔트 도로에 철푸덕 넘어지고 말았다. 존나 아파. 아픈데 웃음이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상황이 웃겼다.  꼴이 우스워서 그랬나. 배를 부여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깔깔깔 웃는 나를 보고 신보라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로 다가와 나를 일으키곤 쭈그려 앉아 힐을 신겨주었다.

 

 

 

데이트  했어?

 

 

 

 물음에 답은 하지 않고 신보라는 입을 앙다문 채로 내가 떨어트린 휴대폰, 지갑 등을 줍고  손에서 맥주가 담긴 봉투와 가방을 뺏어 들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가자고 비틀거리며 따라갔더니 한숨을  쉬고 어깨동무하는 나를 그대로 받아줬다. 착해 우리 보라. 어깨를 잡고 있던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냄새난다고 저리 가라고 질색을 해서 그냥 푸흐흐 웃고 말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신발만 벗고 그대로 소파로 직행해 뻗어버렸다. 그리고 신보라는 테이블에 짐을 내려놓고는 코트를 벗으며 그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셔츠에 검은 정장 치마를 입은 신보라를 보니 예전에 처음 만났을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저런 정장 셔츠랑 치마 아니고 교복 블라우스에 교복 치마였는데. 생각해보니 신보라 고딩  치마는 나보다 짧았던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교장실에  때마다 나한테 와서 치마 바꿔입고  때도 있었는데. 소파에 누워 있는 나를 보던 신보라는 셔츠 양팔을 걷어붙이더니 봉지 안에서 맥주  캔을 꺼내  곁에  앉았다. 나도   가져다 달랬더니 이미 많이 마셔서  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해서 입술을 삐죽이니까 누가 그렇게 혼자 마시랬냐고  내민 입술을 찰싹 쳤다. 이거 약간 감정 실렸는데?

 

 

 

"혼자 마시려고   아니야.  오면 같이 마시려 했어."

 

"그런 애가 전화도  받아?"

 

"전화?  왔는데?"

 

"내가  번이나 했어.  메시지 보고."

 

" 마시느라 몰랐나 보다. 그땐 휴대폰 가방에 넣어놨어."

 

" 이리 많이 마셨어."

 

"그냥 기분이  좋아서."

 

 

 

신보라는 맥주를 들이켰고 그걸 보던 나는 점점 술이 깨는  아니라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머리도 핑핑 돌고 심장도 빨리 뛰었다. 그냥 주량대로 마신  같은데  상태는 평소보다  좋은  같았다. 숨만 쌕쌕 내쉬고 있으니 신보라가 입을 열었다.

 

 

 

언니  낳았대.

 

 

 

앞에 이름도 없었는데 듣자마자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 , 이러려고  마셨나 오늘? 아직도   이름이 불편했다.  자신에게도 상처였고 신보라와는 더더욱 이야기하기 힘들었다. 근데 신보라는 담담했다. 그냥  얘기만 남기고 다시 맥주만 홀짝였다.  년이나 지나서 이제 괜찮아질 때도   같은데  아직도  이름만 나오면 죄인이  기분이었다. 신보라는  알고 있었다. 내가  언니랑 사귄 것도 . 그걸  이별을 통보받은   알아차렸다. 언니가 떠나고 나는 멍청하게 카페에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그러다 오늘처럼 술을 진탕 마시고 오늘처럼 집에 비틀거리며 맨발로 걸어왔다. 그날은 길에서 넘어지기도 해서 무릎도 깨졌었다. 그렇게 울면서 들어왔을  거실에 혼자 앉아 오늘처럼 맥주를 홀짝이던 신보라가 있었다. 신보라를 보는 순간 나는 무너져 내렸다.  언니에 대한 배신감, 현실에 대한 원망, 슬픔, 신보라에 대한 미안함  모든  섞여 눈물로 터져 나왔다.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던 나를 안고 신보라는 한참이나 토닥여줬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신보라에게 안겨 울던 나는 테이블 의자에 놓인 신보라의 가방 안에 있는 청첩장을 발견했다. 언니는 이미 청첩장을  돌렸구나. 내가 언니 선물을 고르고 있을 동안 언니는 청첩장을 고르고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주었구나. 그리고 나는 언니가 청첩장을 보내는 사람  하나가 되지 못했구나. 청첩장을 받은 신보라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오늘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일찍 집에 들어와서 얌전히 있는 것을 보니 어쩌면 신보라는 이미 알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언니한테 차이고 이렇게 집으로 돌아올 것을. 신보라가 언제부터 우리 사이를 알았는지 그것은 중요한  아니었다. 우리 손에 있는 똑같은 반지일 수도 있고 SNS 업로드된 사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통화하는 것을 어쩌다 들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알고도 나한테  마디 원망의 말도 없이 곁을 지켜준 사실과 비참하게 차인 나를 안고 위로해주고 있는 현실이었다.   나는 술에 쩔어 울면서  언니 이름보다 신보라 이름을  많이 불렀던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신보라는 다른  없이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며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미미야.  괜찮아. 그리고   날로부터   후인 오늘,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신보라는 나에게 똑같이 말한다.

 

 

 

괜찮아?

 

 

 

동근이랑 헤어져서 괜찮냐는 질문일까 아니면 언니가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것이 괜찮냐는 질문일까 아니면  상태가 괜찮냐는 질문일까. 괜찮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서 대답을  수가 없었다. 신보라 나는...

 

 

 

나랑 계속 이렇게 지낼  있겠어?

 

 

 

보기에 없던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이건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서 심드렁하게 그럼  어떻게 지내냐고 대꾸했더니 신보라한테 답이  돌아온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신보라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맥주  모금 마셨다고 고새 얼굴은 달아올라서 볼이 핑크색이었다. 아니  모금인  알았는데 테이블 위에 맥주 캔이  개나 있는 걸로 봐서  마신  같았다. 얘가 웬일이래?

 

 

 

"신보라  요즘 무슨  있냐?"

 

"?"

 

"아니 누가  괴롭히면 말하라고. 회사 찾아가서 상사한테 뭐라 하는  못해도 네가 말하면 같이 까줄 수는 있어."

 

"회사에  괴롭히는 사람 없어.  일도  하고 예뻐서 아무도  괴롭혀."

 

"근데 그렇게 야근을 하냐?   거의 5 만에 보는  같은데."

 

" 야근  했는데?"

 

"그럼 집에  이리 늦게 들어왔어?  설마  고딩이랑 .  ."

 

" 걔랑  사귀어."

 

"?"

 

 

 

 고딩이랑  사귄다고.  보는 신보라 눈빛이  마셨는데도 반짝거려서  번에 믿을  있었다. 그래서 진짜냐 묻지 않고 오늘  했냐고 물어봤더니 신보라는  보면 모르냐고 일하고 왔다고 답했다. 크리스마스 빨간 날인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받고 혼자  있어도 되고 일석이조 아니냐는 신보라의 말에  말이 사라져버렸다. 맞네. 나도 일이나 할걸. 그리고 한참 동안 침묵만이 우리 곁을 지켰다. 술기운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거친 우리의 숨소리만  집안을 채웠다. 그리고  적막을  것은 끝이 갈라진  목소리였다.

 

 

 

너는 괜찮아?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 미간을 찌푸리는 신보라를 보니 아까 술을 마시며 했던 수많은 생각들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너는 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고민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나한테 말하지 않는 건지,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알면서  나한테    내지 않고  이해해주기만 하는지, 그리고  너한테 어떤 존재인지.  , 그러니까 신보라와 자는 꿈을   날부터 나를 괴롭히던 신보라에 대한 생각들을 본인 앞에서 이야기하니 마음은 후련해졌지만 내게 남은 것은  본인 앞에서 술에 쩔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보며 충격받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신보라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런 감정도 모두 흘러나왔던  같다. 신보라만 보면 자꾸  꿈이 떠올라 신보라를 평소처럼 대하지 못하던 나에 대한 복잡한 감정 말이다. 보라야  너한테 뭐야?  물음에 신보라는 곰곰이 생각하는  말없이 멍하니 정면만 응시한다. 어쩌면 신보라의 기형적인 연애는   때문인지도 몰라. 어느 새벽 평소 진한 향은 머리가 아프다고 평소 향수도 뿌리지 않던 신보라가  끝이 아릴 정도로 진한 남의 향기를 잔뜩 묻히고 돌아왔을 , 빨래통에서 립스틱이 여기저기 묻은 하얀 셔츠를 발견했을 ,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은  집에서 자던 신보라가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질 , 나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던  같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안정적으로 알콩달콩 연애하던 신보라가 더이상 그러지 못하고 그저 마음이 허할  혹은 몸이 고플  일회용의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정말  때문인  같아 두려웠다. 신보라는 모를 거다. 술을 마셨든 몸을 섞었든 자기가 집에 늦게 오는 날이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발소리가 들리면 급히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다가 신보라가 자기 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밖으로 나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척하며  방문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는지. 죄책감? 안쓰러움? 동정? 내가 아는 단어   감정을 명확히 표현할  있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엉망이었다. 서로 취향이 겹치지 않아 싸울 일이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거짓이었고 신보라가 지보다 어린 애들만 골라 만났다는 것도  예전 말이었다. 이제 신보라는 자기보다 어리든 나이가 많든 상관 쓰지 않는  같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남자는  만나겠다던 나는 남자와 사귀었고 가능성 없는 연애는  한다던 신보라는 가능성을 재던  정성도 들일 필요가 없는 사랑을 했다.

 

 

 

 

 

너랑 자는 꿈을 꿨어.

 

 

 

 

 

그날 이후로 나는  괜찮아. 대답해.  너한테 뭐야? 울음이 잦아들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  보던 신보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일어나 코트만 챙기고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가지 말고 멈추라는  말을 모두 무시하고 신발을 신은 신보라는  마디 말만 남기고 그대로 사라졌다. 오늘은 대답 못해. 시간이 필요한  같다. 술김에 하는 얘기 아니었으면 좋겠어.

 

 

 

 

 

 후로 나는 일주일을 내리 앓았다. 독감이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자면서 보냈다. 꿈을  때도 있었고 너무 아픈 날에는 꿈도 꾸지 못하고 그냥 눈만 감고 앓았다. 그리고 꿈을  때면  신보라가 나왔다. 정작 신보라는 내가 아플   번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병원에 입원하는  좋을  같다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듣고 울면서 거의 4 만에 엄마한테 먼저 전화했다. 갑작스런  전화에 놀란 엄마는 전화를 끊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오셨고 침대에 누워 끙끙 앓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같이 사는 친구가 병원에 데려다준 거냐 물으셨다.

 

 

 

", 엄마. 그리고 보라는 지금 출장 갔어."

 

" 아이고, 엄마 와서 같이 있다고 연락이라도 보내라. 친구 걱정한다."

 

 

 

아니야 엄마. 보라는 집에  들어와 요즘.  연락도  받고 내가 아픈지도 모를 거야. 차라리 모르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아픈 것을 알면 분명 옆에서 자기가 꼬박 날밤을 새며 간호해줄 사람이었다.  언니한테 차이고 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결혼식이 다가오자 지금처럼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신보라는  때도  간호해주느라 결혼식도  갔다. 웨딩드레스 입은 언니 분명 보고 싶었을 텐데. 언니가 드레스 입고 축하받을  나는 여기저기 아파서 울었고 신보라는  눈물을 닦아주며 내가 빨리 낫길 기도했다고 한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결혼식은 가라는  말에 신보라는  언니 생각보다 좋은 사람은 아닌  같다고 답하며 가면 자기가 결혼식  망칠  같아서  가는  좋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빨리 나아서 맛있는  먹자고   진짜 신보라 고마웠었는데. 신보라가   번만 손잡아주면 금방 나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보라 얼굴을 보기는커녕 목소리도 들을  없었다. 결국 나는 새해도 병원에서 맞이했다.  날은  생일이었고 오후에 퇴원을 해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엄마의 설득에  이겨 결국 집에  가족들과 오랜만에 시간을 보냈다.

 

 

 

"정미미, 휴대폰  손에서 내려놔라."

 

"어어 알겠어."

 

 

 

10 가까이 생일을 가장 먼저 축하해주던 신보라한테 아무 연락이 없으니 생일도 생일 같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해보았으나 여전히 신보라에게 연락은 없었다. 얼굴  보여줘도 되니까  있다는 문자라도 남겨주면 좋을 텐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보라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시간이 얼만큼 걸릴지 붙잡고 물어보기라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나름대로 신보라와 떨어져 지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신보라의 결정을 존중하는  맞을  같았다. 10 동안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살았는데 고작 일주일  봤다고 이렇게 허전하고 재미없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미 집에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내가 없는 사이 혼자 답을 찾고  정리해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설레기도 불안하기도 했지만 더이상 피하고 싶지 않아 며칠  있다 가라는 부모님의 제안도 거절하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신보라 나는 준비됐어.

 

 

 

 

 

 앞에 도착했을 때는  12시를 훌쩍 넘긴 늦은 시간이었다. 생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러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평범하게 지나가는   아쉽기는 했다. 그냥 아쉬운 정도였던 감정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완전히 바뀌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서자 현관에 신발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순간 들었던 직감은 미미야? 하고 묻는 다정한 목소리에 사실임이 밝혀졌다. 급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거실  가운데에 엉거주춤 일어나 어색하게 웃고 있는 신보라가 있었다. 그리고 바보같이 나는 신보라를 보자마자 만나면 하려 했던 말들은 모두 까먹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처음엔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신보라는 당황하더니 나에게 다가와  우냐며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었는데 나는 오랜만에 듣는 신보라 목소리가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신보라는 자기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엉엉 우는 나를 보고 미미야 아파 하고 말하긴 했지만 나를 밀어내거나 피하지는 않았다.

 

 

 

" 열두시 넘었잖아.  생일  지났어.  축하한다는 말도  .  진짜 나빠. 연락은   받아?"

 

"미미야, 울지마."

 

 

 

우는  옆에서 어쩔  몰라하는 신보라를 보니 그래도 너무 반가웠다. 나는 아팠는데 너는 멀쩡했어?  없어도  만했냐고 ? 애초에 답을 기대하고  질문은 아니어서 신보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하고 싶었던 말들을 쉬지 않고 했더니 신보라는 말없이  보고 웃기만 했다.

 

 

 

그래서 답은 찾았어?

 

 

 

대답을 준비하는 신보라한테는 미안하지만 이것도 나는 답을 기대하고  질문은 아니다. 왜냐면 신보라, 나는 답을 찾은  같아.

 

 

 

그거  아니었지?

 

 

 

 말에 신보라 동공이 크게 흔들린다. 이럴  알았어. 역시 그런 거였어. 신보라가 떠난 새벽, 잠에서 깨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신보라 방을 쳐다보다가 문득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신보라 침대에서 눈을   . 그리고 모든 기억이 떠오른 순간 나는 입에 물고 있던 물을 그대로 뿜었다.  씨발 신보라가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네. 평소답지 않은 멘트도 치고 평소와 행동도 달랐던   아침의 신보라를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어디에 머리를 박고 싶었다. 냉장고에 쿵쿵 머리를 찧으며 나는  말만 반복했던  같다.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술에 취한 나는  방이 아니라 신보라 방으로 쳐들어갔고 자고 있던 신보라 옆으로 기어들어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다 신보라를 안았던  같기도 하다. 그리고  하는 거냐, 빨리  방으로 가라 등의 말을 하는 신보라에게  방은 춥다느니 오늘만 여기서 자게 해달라  이런 말을 했던  같다. 등을 돌리고 자는 신보라한테 매정하다고 안아달라고 졸랐던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신보라가  안아줬었나. 그렇게 가까이 있다가 숨소리와 피부에 와닿는 숨결에 내가 먼저 키스했다. 이건 확실히 기억났다. 입술이 맞닿았던  촉감이 떠오르자 나는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필름이 끊겨서 다음  없었던 일로 여기는  굴었으니 기억이 생생한 신보라 입장에선  얼굴을 보기도 싫었겠지. 야근도  했으면서 집에 늦게 들어온 이유도 이거 때문이었구나. 신보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아니지?"

 

"……."

 

"그런 표정 짓지말고 빨리 대답해.  아니고 진짜지?"

 

 

 

-

 

신보라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대로 신보라 입에 짧게 뽀뽀했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순간부터 고민한 결과였다. 신보라에게 확인하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미안하다고 무릎 꿇고 빌어야 할까 아니면 필름이 끊겼다고 구구절절 상황 설명을 해줘야 할까. 고민 끝에 내가 찾은 베스트 리액션은 이거였다.  마음을 가장  전달할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신보라 반응 보면 신보라 마음까지   있겠지 싶었다.  소리가 생각보다 너무 크게 나서 약간 부끄러웠다. 일은 저질러 놓고 어쩐지 신보라 얼굴을   보겠어서 바닥만 보고 있으니 신보라가 말없이  손을 잡고 소파로 향했다. 나란히 앉아 있는데 신보라는 여전히 별말 없이 그냥 가만히 있었고 나는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그런 신보라를 쿡쿡 찌르기만 했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화장도  진한  같고 아이라인도 웬일인지 위로 올려 그려서 평소보다  날카로워 보였다. 아니 섹시한  같기도 하고.

 

 

 

"정미미, 괜찮냐고 물어봤지?"

 

"?"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봤었지. 그때."

 

"."

 

" 그때 하나도  괜찮았어. 네가 쌩까는  알았어."

 

"진짜 아니야."

 

"알아 이제는. 근데 그때는 그랬다고."

 

"지금은?"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너무 미운데 괜찮아. 일주일 동안  없이 지내면서 많이 생각해봤어. 내가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생각해보니까 나도 그냥 없었던  하고 예전처럼 지내고 싶었으면 모르는  하고 넘어갔으면 됐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너가 미웠는지."

 

"보라야…."

 

"나는 그거 실수로 치고 없었던  취급하기 싫은  같아. 너는?"

 

 

 

 

 

 

 

새벽은  신기한 시간이다. 새벽에 우리는 평소와 달라진다.  감성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용기를 얻어 낮에는 하지 못할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 못하고 꽁꽁 감추고 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보기도 하고 잊고 싶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슬퍼하기도 한다. 밝은 대낮뿐만 아니라 밤과도 새벽은 다르다. 누구는 그것이 새벽이 아니라 술의 힘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날의 나는 술의 힘을 빌려 일을 저질렀었지만 오늘의 나는 아니다.  날과 달리  감정에 확신을 가지고 새벽의 감성을 빌려 신보라가 없었던 날들 동안 머릿속과 입가를 맴돌던  말을 뱉었다.  일은 아침의 내가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새벽의 나도 똑똑히 기억할 것이고. 서로 달랐던   새벽의 기억을 다시 맞추고 싶다.

 

 

 

 

 

, 우리   번만  볼까?

 

 

 

 

 

 

 

 

 

-

 

 

 

 

 

"신보라 너는 말야, 처음 봤을 때부터 반듯하게 생겨가지고 계단에서 키스나 하고 있고 말야. ?"

 

"너도 담배 폈잖아."

 

"지금은 끊었잖아. 그리고 그게 중요한  아니야."

 

"그럼?"

 

" 존나 잘해."

 

"예쁜  써야지."

 

 

 

침대에 누워 서로 안고 있는데 전해지는 신보라의 온기가 너무 좋아서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쪽쪽 거렸더니 신보라는 좋아서  어깨와 등을  더듬거렸다. 그러다 눈을 맞추니 다정한 눈빛에 녹아버릴  같았다. 씨발 신보라 눈꼬리 내려가서 절대 취향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보고 있는  눈매에 미칠  같았다. 취향 개나 . 그딴  중요한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있다가  한바탕 일을 치르고 자기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는 나를 보며 신보라는 뜬금없이 그렇게 물었다.

 

 

 

"어때? 꿈보다 좋아?"

 

" 그딴 질문을 하냐. 당연히  좋지."

 

"다행이네."

 

"?"

 

"미미야,  일어났을   입고 있었지.  ?"

 

".  설마진짜 뒤진다.  아니지?"

 

" 때리지마.  진짜 거의 직전까지 갔어. 키스는 했어. 진짜로."

 

" 내가 키스한 것까진 똑똑히 기억하거든? 근데…"

 

"근데?"

 

" 씨발 진짜  뒤엔 기억이 없네.  진짜 뒤질래?   이리 ."

 

" 나는 네가 그런  꿨을지는 꿈에도 몰랐어. 진짜.  그렇게 좋아?"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추격전을 하다가 침대에서 서로 응징을 하다가 또다시 티격태격 거리다가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결국   우리의 새벽은 끝까지 제대로 맞춰지지 못했지만 이제 그건 더이상 상관없다. 앞으로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함께  것이고 그동안과는 다른 추억을 쌓아갈 것이다. 우린 그렇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지난 10년의 세월보다  파란만장하고 행복한 시간만 가득하기를, 나는  옆에서 잠든 신보라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기도했다. 좋은  , 보라야.

 

 

 

 

 

 

 

-fin-